세상사는이야기/듣고싶은 이야기 22

산악계 산 역사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

LG그룹 오너가 딸 만난 '산악 대부'…"결혼 후 그쪽 쳐다도 안봤다" 중앙일보 입력 2023.11.18 06:00 정영재 기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킹콩빌딩’이 있다. 등산 배낭을 멘 거대한 킹콩이 빌딩을 올라가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의 집무실과 그가 키워낸 (주)태인이 있다. 이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산악계의 대부’다. 1980년 동국산악회를 이끌고 마나슬루 한국 초등을 이끌었고, 한국등산학교 교장(2000~08년), 대한산악연맹 회장(2005~16년), 현재 아시아산악연맹 수장으로 한국 산악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지난 9월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받았고, 지난해 국민훈장 모란장도 수훈했다. 최근에는 국립산악박물관 구술조사보고서..

아내의 마음새[이준식의 한시 한 수]

동아일보|오피니언 아내의 마음새[이준식의 한시 한 수]〈180〉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30 03:00업데이트 2022-09-30 03:20 언젠가는 소리없이 다가올 때에 나는 어떻게 서러워 해야하나? 欲下丹靑筆, 先拈寶鏡寒. 붓으로 막 그림을 그리려다, 먼저 차가운 거울을 집어 듭니다. 已驚顔索寞, 漸覺빈凋殘.놀랍게도 얼굴은 부석부석하고, 귀밑머리는 점차 성기는 것 같네요. 淚眼描將易, 愁腸寫出難.흐르는 눈물이야 그리기 쉽지만, 시름겨운 마음은 표현하기 어렵네요. 恐君渾忘각, 時展(화,획)圖看.행여라도 낭군께서 절 깡그리 잊으셨다면, 이따금 이 그림을 펼쳐 보셔요. ―‘초상화를 그려 남편에게 보내다(寫眞寄外·사진기외)’ 설원(薛媛·당 말엽) 젊은 선비 남초재(南楚材)는 교제와 견문..

나는 왜 산책을 하는가?

Opinion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2022.08.18 00:42 지면보기 나는 왜 산책을 하는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나는 산책 중독자다. 나는 많이, 아주 많이 걷는다. 나에게 산책은 다리 근육을 사용해서 이족 보행을 일정 시간 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나에게 산책은 예식이다. 산책에 걸맞은 옷을 입고, 신중하게 그날 날씨를 살피고, 가장 쾌적한 산책로를 선택한다. 그리고 집을 나가, 꽃그늘과 이웃집 개와 과묵한 이웃과 버려진 마네킹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돌아온다. 나에게 산책은 구원이다. 산책은 쇠퇴해가는 나의 심장과 폐를 활성화한다. 산책은 나의 허리를 뱃살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안구를 노트북과 휴대폰 스크린으로부터 구원한다. 산..

거인, 유상철 선수

축구 국가대표 "유상철" 선수를 생각한다. "암환자, 이럴 때 서럽다"...나영무 박사가 털어논 유상철 비화 중앙일보 입력 2022.02.25 05:00 업데이트 2022.02.25 10:04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5) 항암치료 기간 동안 암환자의 외출은 조심스럽다. 항암 부작용으로 체력이 확 떨어지거나, 어지럼증 및 피로 등 돌발변수가 생길 수 있어서다. 비교적 몸 컨디션의 사이클이 좋게 올라왔을 때 미뤄둔 볼 일을 몰아서 본다. 컨디션이 올라와도 피로로 인해 3시간 이상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항암제를 맞고 난 뒤 1주일 지나 은행을 찾은 적이 있다.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는데 배에서 가스가 꽉 찬 느낌이 올라왔다. ‘가스가 나오려나’고 생각하는 순간 변실금 실수를 하고 말았다. ..

카톨릭 원주교구의 정의평화 운동사적 의미

원주교구의 정의평화 운동사적 의미 발표자 : 이경국 안드레아 1. 서언(序言) 원주교구 설정 4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 평신도로써 원주교구의 사회정의운동을 조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더욱이 원주교구 설정의 의미는 무엇이며, 매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사목활동을 해야 했던 원주교구가 왜 사회정의운동을 전개해야만 했는가 그리고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전개 과정들은 어떠했는 가를 학문적으로 조명(照明)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한 평신도로써는 더욱 그러하다. 원주교구가 한국교회의 쇄신과 발전,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늘 자긍심(自矜心)을 갖고 있다. 그러나 벌써 4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지학순 주교님의 선종..

이해인 수녀님 대담록

단독]암투병 이해인수녀 “숨쉬는 자체가…” 기사입력 2012-12-27 03:02:00 기사수정 2012-12-27 11:05:25 (동아일보 기사) 사진 더 보려면 Click!이해인 수녀(왼쪽)는 암과 싸우고 있었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23일 부산 수영구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와 최철주 씨가 수녀원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산=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 본보 오피니언면에 '삶과 죽음이야기'를 연재한 웰다잉 강사이자 칼럼니스트 최철주씨가 이해인 수녀와 가진 대담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대담은 지난 23일 부산의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이뤄졌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지면을 통해 요즘 근황을 자세히 전한 적은 오랜만입니다. 현재 암투병 중인 수녀는 밝음과 희망을 잃지 ..

황사영 백서(帛書)

중앙일보에서 퍼왔습니다 두 자 가량 되는 명주천에 썼기 때문에 ‘백서(帛書)’라고 하는데, 깨알같이 작은 1만 3311자나 되는 방대한 내용의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당시의 천주교 교세와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활동, 신유박해 사실과 이때 죽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와 처형 사실, 끝으로 당시 조선 국내의 실정과 이후 포교하는 데 필요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에서 는 민족 감정에서 나오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한편 교회의 평등주의라는 원칙과 당시 조선사회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일부 사가(史家)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황사영은 이 백서가 관변측에 압수됨으로..

江雪(강설)에 대하여

江雪에서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첩첩산중에는 새한마리 날지않고 넓은길가엔 사람발길 끊어졌는데, 도롱이에 삿갓쓴 늙은이 배위에서 홀로 처연하게 눈보라치는 차디찬 강에 낚시를 드리웠다. (주1) 유종원의 시로 당시 개혁을 부르짓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시에서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상상된다, 얼마나 이루려고 했는지...., 지금 나역시 가슴속 아련한 옥마를 끄집어내는 아픔을 이겨보고자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사연들이 많기에, 꼭 강가의 노인네같이 허전하고 아쉽고 슬프다. (주2) 유종원(773 ~818), 유우석 등과 함께 왕숙문의 黨與가 되여 혁신 정치집단을 만든 개혁주의자 였다, 하지만 반대파의 반격으로 꿈은 좌절되고 죽고말았다,저서로는 봉건론, 천설(天說)이 있으..

巧詐不如拙誠(교사불여졸성)이야기

1) 위(魏)나라장수 "樂羊"이란 장수가 중산국을 공격했다, 마침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어 중산국왕이아들을 인질로 삼고 공격을 중지할것을 요구했으나 악양은 응하지 않았다. 화가난 중산국왕은 그 아들을죽여 국을끓여 악양에게 보냈는데 악양은 태연히 받아 그 국을 먹었다. 이에 위나라 임금이 신하에게 악양을 칭찬하며 "악양이 나때문에 자식국을 먹었다"했고, 신하가 대답했다,"자기자식의 고기를 먹는 사람이 누구인들 먹지않겠습니까?"라고......그이후 왕는 공로상은 내렸지만 마음은 항상 악양을 의심했다함, 유명한 "樂羊食子"이야기다. 2) 魯나라 실력자 맹손씨가 사냥을 나가 사슴새끼 한마리를 잡았다, 잡은 새끼사슴을 신하인 진서파 를 시켜 집에 돌아가게 했다, 그런데 어미사슴이 따라오면서 울었습니다, 진사파..

삼국유사(조신이야기)

옛날 신리시대에 세달사 라는 절의 농장이 명주,내리군에 있었는데 주관하는 절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어 농장을 관리하였다, 조신이 농장에 이르러 태수 김흔 공의 딸을 좋아하여 무척 반한지라 여러번 낙산의 관음보살 앞에 가서 남몰래 사랑이 성공 할것을 빌어온지 수년 동안에 그여자는 벌써 배필이 생겼다. 그는 다시 관음당 앞에가서 관세음보살이 자기 일을 이루어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면서 날이 저물도록 슬피울어 그리운 정에 지쳐서 잠깐 졸던 차에 갑자기 꿈에 김씨의 딸이 기쁜 얼굴로 들어와서 백설같은 이를 들어내면서 말하였다. "제가 일찍이 스님의 얼굴을 어렴풋이 알았으나 마음으로 사랑하여 잠시나마 한번도 잊은적이 없었는데 부모의 명령에 부대껴 억지로 다른사람에게 갔던 것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한 구덩이에서 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