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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참가 태극기

하정초원 2012. 7. 9. 12:56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 태극기 찾았다(문화일보,2012년 7월9일자)

개막 기수 故안병석씨가 사용… 전세계에 ‘KOREA’ 처음 알려

독립국가 ‘KOREA’란 국호와 태극기를 앞세워 우리가 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당시 개막식 기수가 들었던 태극기가 발굴됐다.

대한민국 
건국(1948년 8월15일) 직전인 7월29일 개막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KOREA’의 국호와 태극기를 세계에 처음 알렸지만 당시 사용한 태극기의 보존 여부와 기수가 누구였는지는 2010년 12월 대한체육회가 발간한 ‘대한체육회 90년사’에조차 언급돼 있지 않는 등 그동안 묻혀 있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당시 한국
선수단 67명을 대표했던 기수는 대표팀 농구선수(고려대 2년)이면서 최연소로 참가했던 고 안병석(1923∼1984) 선수였고 안 선수의 외아들인 안○○(68) 씨가 당시 부친이 들었던 태극기를 비롯, 선수단 단복 가슴에 붙였던 ‘KOREA’라는 글씨가 선명한 휘장, 기념 페넌트, 올림픽 농구대표팀의 붉은색 하의 유니폼 등 당시 자료들을 보관해 온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태극기는 색이 조금 바랬지만 어느 한 곳 해지지 않고 부드러은 천의 감촉도 그대로 남아 있는 등 보존상태가 양호했다. 당시 건국 전 미군정 시절의 혼란기여서 대한체육회가 올림픽 참가 관련 기념품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안 선수 개인이 소장해 온 것으로 보인다.

아들 안 씨는 64년간 가보로 보존해 온 이 같은 자료의 도난을 우려해 주소지와 자신의 이름도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당시 농구 
국가대표팀 포워드였던 안 선수는 이후 1956년 멜버른올림픽 때 주장을 맡는 등 10년 가까이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이후 산업은행과 조흥은행에서 실업선수로 있었고 성신여고 감독으로 1967년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 준우승의 주역인 김추자·홍성화 등을 키워내는 등 한국농구 초창기의 거목이었다.

현재 농구계의 최고 연장자인 김영기(76) 전 한국프로
농구연맹(KBL) 총재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안 선수와 멜버른올림픽 때 함께 국가대표로 참가해 잘 안다”며 “안 선수는 키가 184㎝로 컸는데 몸이 호리호리해 옷맵시가 좋아 기수로서 제격이었다”고 또렷이 기억했다.

올림픽 기념물과 아버지의 유품을 모아 올림픽
박물관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안 씨는 “독립국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했던 감격을 알릴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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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전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태극기가 바로 이겁니다.”

안방 깊숙한 곳에서 태극기가 담긴 함을 꺼내는 고 안병석 선수의 장남 안모(68) 씨의 표정은 엄숙했다. 태극기는 깨끗하게 보존돼 있었다. 안 씨는 수시로 태극기를 꺼내 방부제를 갈아준다고 했다.

“태극기를 꺼내 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잠시 눈을 감았던 그는 부친에게 전해 들었던 68년 전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친은 당당한 외모와 선수단에서 가장 큰 키 때문에 기수를 맡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영기 전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총재도 “미군정을 설득해 건국 전 런던올림픽 참가를 주선했던 이상백(나중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됨) 씨가 해방 후 처음 국제무대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자리이기 때문에 훤칠한 농구선수가 기수로 나서야 한다고 적극 추전해 안 선배가 선발된 것으로 안다”고 기억했다.

안 씨는 부친이 런던올림픽 기념연찬회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함께 왈츠를 추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환영의 의미로 모든 참가국 선수들과 30초씩 왈츠를 직접 췄다고 한다. 부친은 긴장한 탓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발을 세 번이나 밟았지만 여왕은 당황한 부친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내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192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안 선수는 휘문고-고려대를 거친 ‘명품 사이드슛’의 포워드로서, 1956년 멜버른올림픽 때는 주장을 맡아 활약했고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며 ‘한국여자농구의 전설’ 김추자를 발굴해 내기도했다. 서예가로 3차례나 국전에서 입선하는 등 ‘선비’ 기질도 갖고 있었다.

안 선수는 아들에게 태극기와 올림픽 관련 기념물들을 물려주며 “뜻깊은 물건이니 소중히 간직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부자의 노력으로 의미 있는 태극기 등은 64년간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

자료출처 :  문화일보 (2012년 7월 9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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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谷 安秉奭님은 저의 아주가까운 친척어른입니다, 저의 결혼식때 그림도 주셨습니다, 항상 호탕하시고 섬세하셨던 어른이생각납니다, 우리 廣州안씨 문중의 종손으로 체육인,금융인,화가로서 다재다능하신 어르신이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유품을잘 간직해오신 OO환 형님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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