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기/국내 여 행 길

40년전으로 의 추억여행

하정초원 2023. 2. 15. 18:03

세월은 석양을 넘는데 가슴벅찬 기억은 봄날 새싹처럼 싱싱하고 쑥쑥 자라난다. 결혼한지 1년이 안된 31살의 나는 난생처음 주거지를 떠나 이곳으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전직을 할까도 수십번 생각 했지만 초보가장으로 부담이 태산같고 선친의 염려도 매서웠기에 공직에 잘다니는 아내까지 그만두게 하고 함께 미지의 땅... 이곳에 내려오게 되었다.

 

변두리 공터가 대부분 이었고 논밭을 끼고 있어 황량했다, 처음 맞는직원들과의 서먹함, 3개 사업장의 중간 관리자로서의 과중한 업무,소통.... 이런저런 부적응으로 힘겨운 시간도 있었으나 아내가 내려와 정서적인 안정과  분위기에 익숙해 지며 빨리 패배의식 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듬도 잠시 아쉽게도 2년의 근무를 마치고 올라가게 되었지만....

 

사택인 연립주택에서 이곳생활을 시작했고  출퇴근 하던 골목길은 외로운 동무였다, 회사 근처의 성당에서 우리의 "혼배성사" 를 올렸고, 아들을 얻고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존경하는 외국인 신부님을 만나 짧은 시간이나마 장애인 자원봉사도 했었으니 나의 지방근무는 외로움과 뒤쳐짐의 고통만 있었던것이 아니라 내인생의 화양년화도 있었지 않은가?... 파릇한 믿음으로 남은 세월속에 남으리라, 자랑으로 기억한다.

 

마음속 으로만 사랑하고 추억했던곳... 40년이 지나 오늘에서야 아내와 함께 찾는다, 1시간만에 도착하여 옛 근무처, 성당, 성모병원, 그시절 숙소,그리고 크고작은 골목길.... 눈에 넣고싶도록 소중하고 시리도록 아름다웠다.그때 그리운 사람들의 향기만 스칠뿐 그림자도 없는 적막감, 얄밉게 인연을 빼았아버린 세월이 미웠다.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고회하면서 기도 드림으로 찾지못한 그리운 분들께 진심의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잔잔한 나의 그리움을 남기며 헤어져야만 했다.

 

성당의 기도요청 게시판의 작은 쪽지에 이렇게 몇자 적어놓았다 " 저는 40여년전 임시 본당 지하에서 저희 아들의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저희 부족함으로 그때의 아들이 힘겨움에 있으니 기도를 부탁드린다" 하고 '염치없는 사람이 부탁함' 이라고 썼다, 불청객의 몰염치 이지만 주님의 자비가 있으리라 믿고싶다. 연고없던 낯선곳이 애련한 그리움으로 변했던 이곳,기약도 없이 밤기차로 올라오고 말았다. 두려움에 거닐던 소라산 언덕배기의 외진길, 마음속에 맴돌던 나날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익산역

이리역 폭팔사건으로 새로지은 역사 였으며 뒤편에는 새로 지어진 5층 아파트가 많았는데 지금은 고층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번화가가 만들어져 역동적인 동네가 되어있다.

 

익산역 앞 빌딩

당시에 이리시내에서 E/V가 있었던 유일한 건물...더 크고 웅장한 건물이 있었으면 했는데... 그 옛날 이 건물 어는층의 커피숍에서 지인들과 마시던 커피향내는 기억에 맴도는데... 그때의 친구들은 어디에...

 

나의 옛 근무처
영등동 성당

신축성당 이었는데... 이곳에서 우리 둘만의 혼배성사가 있었는데...지금생각하니 성사의 의미대로 가정생활을 했는지....신앙인의 참다운 인격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성사를 주신 신부님은 선종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본당에 들어가 기도 드리고 싶었지만 관리인이 없고 폐문되어 바라만 보고 왔다.... 참 아쉽다.

 

성모동산

본당과 신부님에 대한 그리움에 울적했다, 선종하신 신부님의 안녕을 위해 기도드렸음

 

성모병원

당시에는 한센인 치료 전문의원이었는데... 현재는 요양병원과 호스피스병동을 개설하여 병원으로 승격된것 같음, 방문하여 관계자로부터 변천과정을 고맙게 들었다. 이곳의 2층에는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님께서 계셨다, 전부터 소통이 있던 아내따라 뵈운적이 있다, 변두리의 임시막사에서 많은 장애인을 케어하고 있었는데...

 

작은힘이나마나 보탠것이 큰 보람으로 남는다. 몇년전 선종하신 신부님께 방문 인사를 드렸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싶었는데 수녀님들도 안계셔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한복 입으신 성모님
내가 살던 신동의 "에덴연립" 주택
이곳 B동,301호에서 지냈다.

당시에 신축건물로 302호와 함께 사택으로 나와 동료가족이 생활했음, 주변에는 건물이 거의 없었고 건너편의 대형 교회와 신동쇼핑센터가 있었는데....쇼핑센터는 없어지고...옆의 또다른 연립주택은 다른 건물로 바뀌어 있다. 3층 살던곳을 방문했는데 주인은 없고 수리중이었다.

 

다만 2층에는 그때의 아주머니께서 살고계신다는데... 뵈울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외출중... 이곳에서 배산공원으로 산책을 간적도... 원광대캠퍼스는 자주가고....인근의 낚시터는 거의 섭렵을 했다, 달리 놀이문화가 없었기에... 특히 임피 저수지에 밤낮으로 많이도 갔었는데....마릿수는 많았지만 월척은 꿈만꾸었지...

 

신동성당

초기에는 임시건물 지하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지금은 가장예쁜 성당으로 우뚝하다, 우리아들 대부섰던 원대교수님 자제분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아마도 성공한 삶을 이어가겠지....지하 작은 카페에서 맛좋은 커피도 얻어마셨다, 카페 봉사자 후덕한 자매님의 배려로 본당에 올라가 우리 둘만의 기도를 드렸다. 지금 힘겨워하는 아들에게 자비를 간구하면서....

 

당시의 신부님을 알고싶었는데.... 카페에 앉은 신자분들과 자매님도, 초기 성당의 내역을 알고계신분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 으로 돌아서야만 했다. 가난하고 힘든사람들, 차별과 편견의 희생자들이 행복해지도록 신동성당이 행동하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신동성당

나의 작은 기도가 큰 울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뀐 교통환경

예전에는 3시간 이상 소요 되었는데.... 개벽할 일인지 1시간 이내다... 마음가는대로 다시 한번 가리라... 그때는 함께했던 동료들의 징한 사투리가 술잔으로 밤새 이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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